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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마음 읽기

이렇게 가난해도 천국인 이유_[천국의 아이들]

by 지제이스토리 2021. 1. 24.

왜 순수한 아이들, 착한 아이들이 아닌 '천국의 아이들'일까

흔히 천국은 자기 안에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아침 새소리도 내 기분에 따라, 상쾌한 노랫소리였다가

시끄러운 소음이었다 하니, 천국도 지옥도 내 마음에 달렸다 함은 맞습니다.

 

각자의 마음 안에 천국이 있어, 자신만의 천국을 만들 수 있다면 '나의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란 감독 마지드 마지디는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통해 먼저 자신의 천국을 보여줍니다.

그의 천국은 이렇습니다. (스포 O)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1

 

알리(아미르 파로크 하스미얀 분)는 학교에서 오기 무섭게 집안 일과 심부름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벌써 아홉 살이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아홉 살 때부터 돈을 벌었다고 하시니, 친구들과 놀지 못하는 건 힘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알리는 큰 사고를 쳤습니다.

 

동생 자라(바하레 세디키 분)의 구두를 수선하러 갔다가 동생의 하나뿐인 분홍색 구두를 그만 잃어버린 겁니다.

외상값 독촉에, 집세 독촉에 시달리는 엄마에게 차마 구두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할 수 없던 알리는

동생에게 사정합니다.

"제발 엄마 아빠한테 이르지 마. 구두를 사려면 또 빚을 져야 한단 말이야.

구두를 찾을 때까지 오빠 운동화를 같이 신자."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2

다행히 자라는 오전반, 알리는 오후반입니다.

냄새나고 더러우며 낡아서 너덜거리는 오빠 운동화를 질질 끌고 학교에 가자니 자라는 눈물부터 납니다. 

하지만 오빠가 혼날까 봐, 엄마 아빠가 또 빚을 질까 봐, 비밀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두 남매의 달리기는 시작됩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리는 자라. 골목 어귀에서 애타게 기다리다 바꿔 신고 학교로 달리는 알리.

자라도 알리도 최선을 다해 달리지만 알리는 매일 지각을 하게 되고,

사정을 모르는 교장 선생님은 한번만 더 지각하면 퇴학시킨다고 야단을 치십니다. 

 

'아,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자라는 자라대로 알리는 알리대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알리나 자라의 눈에 온통 신발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3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 시간,

혹시나 구두를 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 신발만 보던 자라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자기의 분홍색 구두를 신은 아이를 발견한 것입니다.

아이의 뒤를 따라가 집을 알아낸 자라는 오빠 알리와 함께 당당히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그 아이의 아빠가 앞을 못 보는 소경입니다.

 

'우리 집보다 더 가난한 집이다...'

알리와 자라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없이 돌아섭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4

 

그런 어느 날 또 한번의 희망이 생깁니다. 공장에 다니는 아빠가 휴일엔 부업으로 정원사 일을 해서,

알리와 자라의 신발을 사주겠노라 약속한 것입니다. 

이젠 됐다 싶어 행복한데, 하필 아빠의 자전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아빠까지 다치고...

정원사 일로 번 돈은 자전거 수리비와 아빠 치료비로 고스란히 나가고 맙니다.

 

그렇게 남매의 달리기가 일상이 될 즈음,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가 우리 동네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3등 상품이 다름 아닌 운동화!

전국에서 달리기 좀 한다는 초등학생 수백 명이 모인 대회 날. 

알리는 동생과 교대로 신었던 낡은 운동화 끈을 야무지게 동여매고 달립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달렸나? 앞에 아무도 없습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5

 

'1등은 안돼!'

알리는 뒤를 돌아보며 한 명 보내주고... 또 한 명을 보내주고... 그렇게 3등으로 달립니다.

이대로만 가면 운동화는 알리의 것.

하지만 4등으로 달리던 아이가 알리를 밀쳐 넘어지고,

순식간에 6등으로 밀린 알리는 당황한 나머지 정신없이 죽기 살기로 달립니다.

그 결과, 그만 1등을 하고 맙니다.

 

"3등이 아닌가요?"

챔피언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박수, 트로피를 받으면서 알리는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3등 상품인 운동화만 바라보며...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6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7

 

집으로 돌아온 알리는, 잔뜩 기대하고 있는 동생 앞에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못 합니다.

동생도 말없이 돌아서고...

알리는 까져서 피가 나고 물집투성이가 되어버린 불쌍한 발을 연못 속에 담근 채 잠시 쉴 뿐입니다.

 

영화는 끝나가는데 그럼 아이들 신발은 어떻게 되는가?

다행히 감독은 시장 보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빠의 자전거 짐칸 속에 알리의 하얀 운동화와 자라의 빨간 구두가 있습니다.

휴- 관객도 그제야 안심을 합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8

 

여기까지, 마지드 마지다 감독의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왜 '착한 아이들'도 '순수한 아이들'도 아닌 '천국의 아이들'일까.

영화 속에서 감독이 생각하는 천국은 충분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구두를 잃어버렸지만 부모를 조르기보다는, '교대로 신기'라는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아이들.
내 구두를 신고 있는 아이를 찾았지만 누구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마라톤'이라는 정당한 방법을 찾아내는 아이들.
나에게 필요한 삶이 꼭 1등이 되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알려주는, 3등 상품 운동화.
각자가 자기 역할을 다하는 세상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해주는 듯, 아이들 신발은 아빠가 사주는 데서 끝나는 엔딩.

 

이것이 마지드 마지다 감독이 말하는 천국의 정의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알리와 자라의 행동을 '순수함'이라 부르든 '지혜'라 부르듯 상관없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고, 살기 바쁜 어른들도 그 역할에 다들 충실했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영화 천국의 아이들 캡처9

 

1997년에 제작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01년에 개봉한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

꼬박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천국은 어떤 모습인가' 생각케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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