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속 마음 읽기

너의 진짜 이름을 잊지 마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by 지제이스토리 2016. 8. 1.

 

저는 영화 보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제 기준에 재미있는 영화이죠.^^

그런 영화들을 보다 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두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저 편안하게 앉아 누군가가 열심히 만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기만 하면 되는 거죠.

나의 힐링, 나의 휴식... 누구에게나 그렇듯 마음에 남는 영화들이 있을 텐데요.

그 첫번째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7월 일본 개봉 / 20026월 개봉 / 2015년 한국 재개봉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이 문제야

 

시골로 이사 가는 날, 학교도 옮겨야 하고, 친구들과도 헤어진다는 사실에 10세 소녀 치히로는 짜증이 납니다.

덜컹거리는 차 뒷좌석에 앉아 투덜대고 있는데 아빠는 길까지 잘못 들어 오래된 터널 앞에 멈춰버리죠. 터널 저편에는 폐허가 되어버린 놀이공원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기운에 치히로는 빨리 돌아가자고 하지만 호기심 많은 엄마아빠는 계속 구경을 하다가 어느 음식점에 차려진 진수성찬에 반해버립니다.

주인도 없는데 허겁지겁 먹어대는 엄마아빠,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고 해놓고, 엄마아빠는 왜 저러실까요.

카드도 있고 돈도 있어. 나중에 계산하면 돼.”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먹는 데 정신이 팔린 엄마아빠를 뒤로 하고 홀로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치히로는 하쿠라는 소년을 만납니다. 치히로를 본 하쿠는 몹시 놀라 소리칩니다.

여긴 위험해. 해가 지고 있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

순식간에 어둠이 내리고 치히로는 엄마 아빠가 있는 곳으로 도망칩니다.

그런데 세상에! 세상에! 엄마아빠가 돼지로 변해 버렸습니다.

식탐에 빠져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음식을 먹어버린 대가로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한 것입니다. 이래서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이 골치입니다.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하지 않고 식탐만 부리는 건 돼지에 불과해

 

사실 그곳은 밤이면 800만 신령들이 피로를 풀러오는 온천장이었습니다.

무섭고 겁나지만 치히로는 엄마아빠를 구하기 위해 남기로 합니다.

치히로는 온천장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를 만나 일자리를 달라고 합니다. 하쿠 말이 그곳에서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고, 일하지 않는 자는 유바바가 동물로 만들어버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유바바는 노동 계약을 하며 치히로라는 인간 이름을 빼앗고 센이라는 새 이름을 줍니다.

그것은 마녀 유바바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이름을 빼앗긴 후 원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영원히 마녀의 노예로밖에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치히로를 도와주는 하쿠도 자기 이름이 뭔지, 자기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마법을 배우러 왔다가 자기를 잃어버리고 유바바의 조정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요.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도저히 내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비록 자기는 어쩔 수 없지만 하쿠는 치히로만큼은 끝까지 도와주려고 합니다.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가 누구인지는 기억해야 해

 

그렇게 평범한 한 어린 소녀의 모험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치히로에게는 모험극에서 흔히 등장하는 신비로운 무기 따위는 쥐어지지 않습니다.

치히로의 유일한 무기는 인간의 도리에 맞는 따듯한 마음과 행동, 그리고 인간세계에서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뿐입니다.

,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는 것이랄 수 있습니다.

 

목욕탕 청소를 맡은 치히로는 열심히 일하면서, 온천장에서조차 무시당하는 얼굴 없는 유령 가오나시의 친구가 되어주고, 인간들이 버린 온갖 쓰레기들 때문에 부패신이 되어버린 강의 신의 몸을 씻어주고, 과잉보호 받는 유바바의 뚱뚱한 손자 보우에게 바깥세상을 구경시켜 줍니다.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열리는 건 인지상정, 유령들도 치히로를 도와주고, 치히로가 바라는 대로 되기를 응원합니다.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유바바와 똑같은 능력을 가진 제니바는 재물에만 눈이 먼 동생과 달리, 검소하고 따듯한 인물이죠. 유바바가 시켜 제니바의 물건을 훔치다 부상당한 하쿠를 돕기 위해, 제니바를 찾아간 치히로는 그녀와 시간을 보내며 똑같은 능력을 가진 두 사람의 다른 삶을 보게 됩니다.

치히로의 머리끈을 직접 만들어주며 제니바가 말합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들은 쓸모가 없어.”

마법이라는 허상에서 튀어나온 것들은 진짜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제이스토리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꼭 나오는 단골 대사 뒤돌아보지 마라

 

우여곡절 끝에 치히로는 엄마 아빠를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게 하고, 하쿠의 원래 이름도 찾아줍니다.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가는 치히로에게 하쿠는 말합니다.

터널 지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돼.”

 

뒤돌아보지 마라.”

이 대사, 참 낯익습니다. 어떤 한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스토리에는 단골로 나오는 멘트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주인공이 행여나 뒤돌아볼까 싶어 심장이 쫄깃쫄깃해집니다.

다행히 치히로는 한 번의 위기는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앞만 보고 갑니다.

 

근데, 왜 꼭 뒤돌아보면 안 되는 걸까요? 그 말은 곧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로 들립니다.

사실, 어떤 날들을 거쳐 내가 성숙해지고 성장했다면, 뒤돌아갈 필요는 없겠지요. 힘들게 벗어난 세계(영화에서는 유령세계)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겠지요.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까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목이 왜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아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까.

감정이입을 해보자면, 센도 나고 치히로도 나인 것입니다.

센은 유령세계에서의 나라면, 치히로는 인간세계에서의 나. 나는 둘 다 나라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센으로 살 것인가, 치히로로 살 것인가.

 

이웃집 토토로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원령공주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이 작품은 딸아이의 친구를 위해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놓는 작품마다 자연과 어린이의 하나 됨을 표현하고 있는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오직 아이의 순수함만이 어른들을 구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틀이나 고정관념에서 탈피,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인간에 대한 따듯한 사랑이 느껴져 행복하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더욱 큰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욕심이라는 망념으로 인해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를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는 맑고 순수한 영혼(치히로)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란 어떤 위기가 닥쳐도 본성(이름)을,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알았다면 잃지 말아야 할 것이고, 잃었다면 어서 회복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영화입니다.

 

댓글